영원이란 이름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대학생 시절, 내 이름을 학생회관과 문과대 사이에서, 그 넓디넓은 광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외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도~롱~뇽~! 여음은 강의실 곳곳으로 뚫고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그 소리는 정타를 맞은 범종의 종소리처럼 길고도 아득했습니다.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싫지도 않았습니다. 내 이름을 그렇게 크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심 그 아이가 더 심한 장난을 쳐주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중간고사 때였나, 기말고사 때였나, 그 여학생이 강의노트를 빌리려 우리집 앞까지 왔습니다. 


나는 그 학생을 위해 시험에 나올 것들을 따로 깨끗한 글씨로 정성껏 정리를 해줬습니다. 그대로 외워서 적어도 정답이 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준 것입니다. 바로 그 다음날이 시험이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서와 대서 사이입니다. 일 년 중의 가장 뜨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서가 지나면 곧장 입추가 되겠지만, 그래도 더위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습도가 높아져서인지는 몰라도 머리가 무거워져 공부를 방해합니다.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강의 소설을 다시 책상 위에 펼쳤습니다.


“노랑무늬영원, 하고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영원이란 도롱뇽과에 딸린 속명일 뿐이라고 씌어 있지만, 그 동명이의어의 울림은 가냘프게 내 마음을 움직인다. 왜인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미미한 움직임이다.” 


이 부분이 무엇인가의 끝자락을 붙잡고 영원처럼 아득해졌습니다.


도롱뇽이 나의 또 다른 이름, 그 누군가가 불러준 내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롱뇽과의 속명이 영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순간이 순간을 만나 심연을 보여줍니다. 


시간 보내기를 하려는 의도도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낸 시간이 십 분 이십 분, 아니 한 시간, 두 시간,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인생은 이름대로 된다는 말도 있기에 생각은 더욱 섬세하고 미세하게 반응했습니다.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는 말도 있기에 생각은 더욱 간절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불에 댄 듯 정신을 차렸습니다.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한계 지점에서 정신은 불현 듯 수면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맑은 공기를 폐부로 끌어들이며 거칠고도 힘찬 심호흡을 거듭 했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글이 가져다준 감동은 독서 행위가 주는 내면의 선물입니다. 


누구는 한강의 글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싫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습니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토록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파고드는 그 치열함에 박수를 쳐줄 때가 많습니다. 그 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노랑무늬영원에서 ‘영원’은 어린 아이가 키우는 도롱뇽의 이름입니다. 엄마의 실수로 한쪽 팔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지만, 그의 팔은 또 다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름이 실감나게 전해졌습니다. 


교통사고로 팔을 다친 소설 속 인물은 이런 말로 인식을 전했습니다. “손이란 그런 것이다. 한 사람의 거의 전부다.” 사실입니다. 손이 없으면 정말 힘듭니다. 손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오늘은 오전 내내 손에서 도롱뇽으로 그리고 다시 감각과 기억과 영원이라는 개념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서 시간을 조금씩 떠나보냈습니다. 잊지 말라는 물망초의 꽃말을 떠올리면서 깊은 심연 속에 말들을 심었습니다.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충분히 견뎌 주리라 믿으며.



작성 2025.07.21 10:36 수정 2025.07.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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